위스키 같은 매치다. 매년 숙성을 거듭하면서 그 향기가 깊어진다. 12일 열렸던 울산 현대 호랑이와 포항 스틸러스의 157번째 라이벌 전, '동해안 더비' 이야기다. 정규리그를 우승하며 자신들의 시대를 선언한 울산과, 모든 악조건을 돌파하면서 FA컵을 들고 돌아온 두 챔피언의 격돌이었다. 한국 프로축구사에 존재하는 가장 유서 깊은 전쟁은 동해안 더비다. 관점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겠으나 1984년을 그 시작으로 본다. 그럼에도 한때 리그를 대표하는 빅 매치는 수도권에서 벌어지는 FC서울과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슈퍼매치'였다. 이제는 꽤 많이 알려졌지만 동해안 더비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크게 다뤄지지 않았다. 매체 주목도부터 관중 수까지, 동해안 더비는 그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리그를 집어삼킨 울산과, 경이로운 저력을 매번 보여주며 끝없이 선두를 위협한 포항의 선전은 동해안 더비로 단숨에 스포트라이트를 끌어왔다. 그 배경엔 더비의 중요성을 실감한 양 팀 프런트의 꾸준한 홍보 노력, 축구의 신이 손을 쓰기라도 한 듯한 극적인 순간들, 그리고 양 팀 팬들의 뜨거운 지지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