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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환의 깃발이 동해안 더비를 더 특별하게 만든 이유

높은 경기력·쌓이는 이야기에 ‘명품 더비’ 화학반응 가속

12일 열린 동해안 더비 직후, 울산 김태환의 '깃발 꽂기'는 동해안 더비의 스토리에 새로운 깊은 맛을 더하는 한 수였다. ⓒ울산현대호랑이 인스타그램 캡처

 

위스키 같은 매치다. 매년 숙성을 거듭하면서 그 향기가 깊어진다. 12일 열렸던 울산 현대 호랑이와 포항 스틸러스의 157번째 라이벌 전, '동해안 더비' 이야기다. 정규리그를 우승하며 자신들의 시대를 선언한 울산과, 모든 악조건을 돌파하면서 FA컵을 들고 돌아온 두 챔피언의 격돌이었다.

 

한국 프로축구사에 존재하는 가장 유서 깊은 전쟁은 동해안 더비다. 관점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겠으나 1984년을 그 시작으로 본다. 

 

그럼에도 한때 리그를 대표하는 빅 매치는 수도권에서 벌어지는 FC서울과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슈퍼매치'였다. 이제는 꽤 많이 알려졌지만 동해안 더비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크게 다뤄지지 않았다. 매체 주목도부터 관중 수까지, 동해안 더비는 그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리그를 집어삼킨 울산과, 경이로운 저력을 매번 보여주며 끝없이 선두를 위협한 포항의 선전은 동해안 더비로 단숨에 스포트라이트를 끌어왔다.

 

그 배경엔 더비의 중요성을 실감한 양 팀 프런트의 꾸준한 홍보 노력, 축구의 신이 손을 쓰기라도 한 듯한 극적인 순간들, 그리고 양 팀 팬들의 뜨거운 지지가 있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12일 경기는 또 한 번의 전환점을 찍었다. 경기는 3:2 울산의 승리로 끝났는데 이날의 진짜 하이라이트는 경기 후에 나왔다. 울산의 김태환이 한 서포터즈 소모임의 대형 깃발을 피치 위로 들고나와 꽂았다. 울산 팬들의 엄청난 환호성이 그의 등과 깃발을 파도처럼 덮쳤음은 물론이다.

 

김태환의 이날 퍼포먼스에 대해선 여러 추측이 있지만 지난 2019년으로 기억을 돌리는 해석이 많다. 당시 동해안 더비에서 비기기만 해도 우승하는 울산은 포항에 대패를 당하면서 무너졌다. 포항의 한 팬은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경기장에 난입, 코너 플래그에 포항의 깃발을 꽂다가 제지당한 바 있다.

 

김태환의 '깃발 꽂기'는 동해안 더비의 스토리에 새로운 깊은 맛을 더하는 한 수였다. 기자가 생각하기에 스포츠에서, 라이벌팀 간 도발을 주고받는 것은 몇 가지 원칙을 벗어나지 않으면 아주 바람직한 권장사항이다. 그 몇 가지란 물리적·언어적 폭력행위, 위험요소를 동반한 행동, 경기장 밖에서의 소란 등이 되겠다. 김태환의 퍼포먼스는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포항 팬들은 분루를 삼키며 다음 동해안 매치를 손꼽아 기다리게 됐고, 울산 팬들은 어느 우울한 날 잠들기 전 기분전환을 위해 이날 휘날리던 푸른 깃발을 떠올릴 것이다.

 

조금 오지랖을 부리자면 이 깃발에서 출발해 동해안 더비에 아예 공식적인 세리머니가 등장했으면 할 정도다. 명품 더비 매치는 높은 경기력과 쌓이는 스토리가 일으키는 화학반응으로 완성된다. 이 한 수로 올해도 동해안 더비의 풍미는 또 한 번 깊어졌다. 김태환의 낭만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