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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참을만큼 참았다 

축협에서 사라진 리그 팬들에 대한 존중
박주호의 용기있는 폭로를 왜곡 말아야 

 대한축구협회의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을 둘러싼 논란이 점입가경이다.진은 기자회견중인 이임생 기술이사. ⓒ연합뉴스

 

참을 만큼 참았다. K리그 팬들이 말이다. 특히 울산 팬들의 분노는 기자로서도 감히 짐작기 어렵다(10일 문수경기장에서 확인할 생각이다).

 

대한축구협회(축협)의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을 둘러싼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이미 많은 언론인들과 방송인, 몇몇 관계자들이 지적하고 있는, 협회의 감독 선임 과정에 말을 보태진 않으려 한다. 굳이 기자가 졸필을 써가며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축협이 리그를 대하는 태도다.

 

본격적인 논란은 협회가 치열한 선두 경쟁 중인 울산 HD 호랑이의 홍명보 감독을 사실상 강탈하면서 시작됐다. 최종적으론 홍 감독의 선택이 있었다지만, 애초에 한창 시즌 중인 리그 감독을 빼오겠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다.

 

협회의 이 폭력적 발상은 사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전북 팬들 중엔 2012시즌, 최강희 감독을 한차례 빼앗긴 바 있다. 외국인 감독 후보군을 활용한 언론 플레이, 불투명한 선임 과정, 석연찮은 설명……데자뷔라기 보다는 재연에 가까워 보인다. 취임 기자 회견에서 전북 복귀 의사를 밝히면서까지 리그로 돌아간 최 감독의 후임은 우연히도 홍 감독이었다.

 

협회가 리그, 리그 팬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이임생 이사의 8일 기자회견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이 이사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라고 고개를 숙였으나, "울산을 응원하겠다"와 같은 무책임한 발언은 리그 팬들을 조롱하냐는 빈축을 샀다.

 

과거엔 리그를 희생해서 국가대표에 '올인'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이는 한국 축구 토양을 황폐화시키는 원시적 처방이다. 지금 우리의 K리그와 축구 팬들의 눈높이를 감안한다면 믿기 힘든 퇴보 아닌가. 유럽 축구를 바라보며 북한 축구를 향하고 있는 아이러니다.

 

리그의 든든한 지원군이자 울타리가 될 수도 있는 협회의 태도가 이러하니, 최근 정치권의 수작으로 의심되는 '홈 유니폼 색상 파문'도 일견 이해가 간다. 슬프게도.

 

대체 누가 한국 축구의, 축구팬들의 자존감을 땅에 파묻고 있는가. 박주호 선수의 용기 있는 제보가 용의자를 좁혀줬다. 팬들 입장에선 마치 희망의 등불을 본 것과 같은 폭로였지만, 이미 수치심을 잃은 축협은 최악의 대응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유튜브를 거론하며 박주호가 말한 의도를 왜곡하려는 것은 과연 누구인가.

 

K리그에 대한 존중이 필요, 아니 절실하다. 늦지 않았고, 또한 정몽규 회장 이하 축협 수뇌부의 용단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고쳐나갈 수 있는 일이다. 팬들이 분노조차 하지 않을 때- 그럴 이들조차 남아있지 않았을 때가 정말 늦은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