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이런말 해도 돼나 모르겠는데……"
10일 문수경기장에서 수첩과 녹음기를 들이댈 때마다 들은 문구다. 놀랍게도 마치 사전에 짠 것처럼 관중 셋 중 하나는 이렇게 운을 뗐다. 뒤이어 나온 내용도 비슷했다. '욕이 절로 나온다'였다. 홍명보 감독 사태에 대한 팬들의 느낌이다.
이날 문수를 찾은 취재진의 관심사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한 가지는 홍 감독의 입장 발표였고, 다른 하나는 울산 팬들의 반응이었다.
부슬비 속에 경기장을 찾은 울산의 팬들은 겉보기엔 여느 리그 일정과 다를 게 없었다. 모두 축구라는 축제를 즐기러 왔고,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러 왔으며, 구단에서 마련한 다양한 이벤트를 만끽했다. 궂은 날씨, 평일 저녁 경기임에도 푸른색으로 경기장을 메웠다.
하지만 기자가 질문을 던지면 알 수 있었다. 팬들의 마음속엔 홍 감독과 대한축구협회에 대한 차가운 분노가 자리했다.
"차라리 (구단에 남겠다는)말이나 하지 않았으면 모르겠는데, 이건 사람대 사람으로 아주 무시를 당한 것과 같습니다"
"뒤통수를 크게 맞은 기분이고, 욕 말고는 할 말이 많지 않네요"
"팬들이라면 화가 나지 않는게 비정상입니다. 이런 배신을 당할 줄은 몰랐습니다. 이건 울산 시민 자존심에 상처입니다."
"외국인 감독이든 한국 사람이든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고, 전 세계 어디에서 리그 선두 경쟁 중인 감독을 빼갑니까? 그렇게 우리나라에 사람이 없습니까?"
"다음 감독은 비겁하지 않은 사람, 도망가지 않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경기 시작 전부터 남쪽 응원석에 하나 둘 걸개가 걸리기 시작했다. 재치 있는 문구로 썼지만, 내용은 홍 감독과 협회의 비상식적 행보에 대한 성토였다. 간간이 용기 있는 폭로를 한 박주호 선수에 대한 응원과 지지글도 보였다. 최근 논란이 됐던 좌석 빨간 도색 시도에 대한 비판으로 '울산은 붉은 적이 없다'라는 내용도 있었다.
원정 온 광주FC 응원단도 정몽규 축협회장에 대한 비판 걸개를 들어 보였다.

홍 감독이 장내 아나운서에 의해 소개될 때 울산의 팬들은 큰 야유로 울화를 쏟아냈다.
경기는 어수선한 가운데 광주 이희균의 결승골로 끝났다. 홍 감독은 경기 뒤 "정말 울산 팬들한테 죄송하고 드릴 말씀이 없다"라고 사과한 뒤 "축구 인생에서 이번이 마지막 도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두려움 속에서도 다시 한번 해보자는 강한 승부욕이 생겼다"라고 대표팀 감독직으로 가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울산 팬들의 마음을 풀어주진 못했다. 경기 뒤 한 팬은 홍 감독의 설명을 접하고 "말이 되는 소리인가, 완전 자기 생각만 하는 변명"이라고 평하며 귀가길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