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 왔습니다. 한 해의 뒷자락을 맞이하며 우리는 성숙의 계절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우리는 축구와 함께 많은 이야기를 쌓아왔습니다. 선수들도, 팬들도 1월부터 시작된 경기와 훈련의 시간들이 이제 막바지에 다다랐습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선수들 중에서도 경력이 많은, 이른바 ‘베테랑’ 선수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축구계에서 흔히 33세에서 36세 이상의 선수들을 ‘베테랑’이라 부릅니다. 일반적으로 30대 후반에 은퇴하는 축구 선수들의 나이를 고려하면, 현역 선수로서의 나이로는 할아버지 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처음 축구화를 신고 그라운드에 섰을 때, 수많은 동료와 함께 뛰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이제는 그들 중 많은 이들이 그라운드를 떠났고, 남은 몇몇만이 여전히 현역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베테랑이라는 이름에는 단순히 나이를 의미하는 것 외에도 여러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우선, 오랜 시간을 축구에 바친 그들의 ‘헌신’이 있습니다. 그리고 축적된 ‘경험’이 그들의 관록을 더욱 빛나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품격’입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후배들을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에게 모범을 보이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아는 모 프로 선수는 독일에서 선수 생활 중, 그곳에서 유학 중이거나 프로 선수 생활을 하는 후배들을 직접 만나며 조언과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연봉이나 이적에 흔들리지 않고, 국가대표로서의 품격을 지키며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킨 선수들도 많습니다. 베테랑이 존경받는 이유는 바로 이 ‘품격’에 있습니다.
이들은 그라운드에서 보여주는 경기력뿐만 아니라, 후배들과 사회에서의 태도에서도 귀감이 됩니다. 그들이 은퇴한 후, ‘레전드’로 불리기까지는 수많은 노력과 인내가 따릅니다. '원클럽맨'이 아니더라도, 한국 축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선수들은 많습니다. 승패가 평가의 기준이 될 때도 있지만, 우리는 그들의 모든 여정을 존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경기를 뛰었던 선수가 아니라, 축구를 통해 우리와 함께 울고 웃었던 삶의 동료이기도 하니까요.
구단의 사정이나 선수들의 체력적인 문제로 인해 그들이 그라운드를 떠나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노쇠한 부품처럼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한 분야의 장인으로서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 잡혀야 합니다. 서포터즈와 미래의 어린 선수들을 위해서도 이러한 본보기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가을, 우리는 축구계뿐만 아니라 주변의 베테랑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학창 시절의 은사님, 직장 선배, 가족, 부모님 등 우리 삶 속에 함께 해온 분들을 떠올리며 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또한 축구 선수들은 잊힘에 쓸쓸함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축구 선수들에게도 따뜻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보는 건 어떨까요. 쌀쌀해지고 있는 가을날에 쓸쓸하지 않게. 품격 있는 당신과 함께 이 따뜻한 마음을 나누고 싶습니다.
#. 에필로그
지난 주말. 제주유나이티드와 대전하나시티즌과의 경기(2024.10.6.)를 위해 제주에 온 대전의 오재석 선수와의 진한 만남이 있었습니다.
2012 런던올림픽 때의 앳된 모습을 뒤로하고 어느새 1990년생인 그도 베테랑이 되어 있더군요. 제가 제주에 살다 보니 제주유나이티드를 응원하고 있었지만, 후반 막판에 교체 출전한 재석이를 보면서 응원하며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습니다.
잘 버티고 있는 베테랑. 그들을 위해 시 <12월의 달력>을 보냅니다.
<12월의 달력>
김승현
지금은 막 쌀쌀해질 무렵의 11월
표지부터 10월까지 벗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우리를 지탱하던 벽에 박힌 못은
한결 가벼워진 무게를 만끽하고 있어
남겨진 나와 11월의 달력
우리 두 장은 찢겨진 다른 애들보다 나을 거라 생각해 봐도
언젠가 이 벽에서 떨어져 나가겠지
오랜 벗 11월과 헤어지고 나의 얼굴이 드러나면
삼십 한밤 빛을 받다 떨어져 나가겠지
속살 하얀 벽이 드러나면
또 다른 우리로 덮일 거야
표지부터 12월까지 13장

김승현 논설위원
제주 태생, 글과 축구를 사랑하는 예술인.
시집 『사람별하트』 저자
現) 아인스하나(주) 이사
現) (사)한국문인협회 제주지부 청년문학위원
現) 스토리에이지(주) 편집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