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2월, 인천 유나이티드는 한 명의 공격수를 영입한다. 2년 연속 극적 잔류에 성공한 인천은 최전방에 확실한 해결사가 필요했다.
인천의 선택은 25세의 현직 몬테네그로 국가대표 공격수였다. 리그의 전설이 된 데얀 다먀노비치의 성공으로 인해 인천에겐 수상할 정도로 동유럽 공격수를 잘 사 온다는 이미지가 있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 영입이 인천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을 것이라 생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 선수가 팀 내 최다 득점 기록을 갈아치우고, 서쪽의 항구도시를 상징하는 간판 공격수가 되리라는 예상은 더욱 어려웠다. 스테판 무고사(Stefan Mugoša)의 시작은 그러했다.
무고사는 자국 리그인 몬테네그로의 1부 부두치노스트 포드고리치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같은 리그의 믈라도스트 포드고리차를 거쳐 분데스리가에 진출했다. 잠재력은 인정받으며 FC 카이저슬라우테른, TSV 1860 뮌헨, 카를스루에 SC에 몸담았지만 정착엔 실패했다. 직전엔 국내서 이름도 생소한 몰도바 1부 리그인 셰리프 티라스폴에 있었다. 무고사에 대한 기대치가 아주 크지 않은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러나 3월 3일, 무고사는 데뷔 전에서 데뷔골을 넣으면서 연착륙의 시작을 알렸다. 데뷔골보다 충격적인 것은 무고사의 경기력이었다. 이날 무고사는 강원을 상대로 팀 모든 슈팅의 절반인 7개의 슈팅을 날려 4개를 유효슈팅으로 만들어냈다.
이 시즌, 무고사는 34경기에서 19골 4도움이라는 맹활약을 펼쳤다. 무고사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인천은 또다시 하위권에서 고전하며 최종전에서야 잔류를 확정한다.
약팀의 에이스는 늘 영입 대상이 된다. 무고사에게도 시즌 뒤 많은 '러브콜'이 쏟아졌다. 그러나 최종전에서 승리한 뒤 그를 둘러싸고 함께 열광한 검푸른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무고사는 예상 밖의 재계약과 함께 인천과 동행을 이어간다. 무고사의 대답은 "인천은 내게 기회를 준 팀(2019년 2월, 스포츠춘추 인터뷰)."이었다.
하지만 2019년도 무고사와 인천에겐 만만치 않은 해였다. 문선민과 아길라르가 팀을 떠났다. 인천의 심장 김도혁도 입대했다. 안데르센 감독은 초반 부진에 경질됐다. 인천의 팬들은 데자뷔를 느끼며 불안에 떨었지만 한 선수를 보면서 마음 한구석을 달랬다. 팀의 승패와 무관하게 한결같은 폼을 보여주는 무고사였다. 무고사는 이해 또다시 팀 득점의 절반 정도를 홀로 책임졌다. 인천 팬들이라면 영원히 잊기 힘든 명언도 남겼다.
"인천은 K리그1에 남을 자격이 있는 팀이다 (9월 울산전 헤트트릭을 기록한 뒤 인터뷰)."

2020년, 유상철 감독이 건강 악화로 자진사퇴한 뒤 인천은 또다시 익숙하게 어두운 상반기를 보냈다. 유 감독의 추천으로 지휘봉을 잡은 임완섭 감독은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4개월 만에 물러났다. 팀 상태와 별개로 무고사는 빠르게 인천의 전설이 되어갔다. 이 시즌 무고사는 유병수를 제치고 팀내 최다 득점자에 이름을 올렸다. 24경기 12골 2도움이 시즌 최종 기록이다. 인천에서 더 이상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스트롱맨 세리머니'를 모르는 팬은 없었다.
2021년 무고사는 또다시 재계약하며 좋은 쪽으로 인천 팬들을 놀라게 했다. 인천이 팀 내 최고 조건을 제시했지만 사실 정말로 그를 잡을수 있을지는 물음표였다. 무고사는 "팀의 전설이 되고 싶은 바람에 구단이 화답해 줘 감사하다"라고 재계약 배경을 밝혔다. 이 소식은 리그의 다른 팬들에겐 씁쓸한 경계심을 함께 안겨줬다. 지금껏 리그의 모든 슈퍼스타들이 그랬듯이.
위기는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가 창궐한 2021년은 모두에게 힘든 시기였다. 무고사에게도 그랬다. 한국에 입국 후 자가격리 도중 확진 판정을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고국의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고향에 다녀왔으며, 그 과정에서 또다시 가족들이 확진되면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도중엔 아버지가 결국 별세하는 아픔도 겪었다. 20경기 9골. 숫자만 봐서는 다소 아쉽지만 어떤 인천 팬도 무고사를 비난하지 않았다. 지난 몇 시즌 간 무고사는 인천 팬들에게 그 정도의 신뢰감을 안겨줬다.
2022년, 무고사는 개막전에서 자신을 증명하면서 시즌을 열었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상대로 결승골을 기록하면서 12년 묵은 홈 개막전 무승 징크스도 깼다. 17경기만에 14골을 넣으며 무서운 속도로 '득점왕 페이스'에 진입했다. 팀을 안정시킨 조성환 감독의 지휘 아래 인천도 무고사를 영입한 뒤 처음 맞는 최고의 상반기를 보내고 있었다.
이별은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 자국리그 내 '탈 일본급' 영입을 지속해온 빗셀고베가 무고사와 인천에게 바이아웃 100만 달러와 두 배 이상의 연봉을 제시했다. 거절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결국 지난달 25일 FC서울과의 원정경기가 무고사의 인천에서의 마지막 경기가 됐다.
이별을 예감한 인천 팬들은 'NEVER FORGET OUR MEMORIES(영원히 기억할게)', 'GoodLuck #9'과 같은 현수막을 들어 무고사에게 응원을 보냈다. 동점골의 주인공 이명주는 무고사의 트레이드 마크 '스트롱맨 세리머니'로 그를 향한 존중을 보였다. 무고사는 "인천 팬분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죽을 때까지 간직하겠다"라는 마지막 인터뷰를 남기고 응원석으로 걸어가 엠블럼에 입을 맞췄다. 이별조차 낭만적이었다.
무고사가 지난 5년간 인천에 남긴 영향은 기록에 모두 담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그의 족적은 팬들의 마음에 깊고 단단하게 남았다. 무고사의 마지막 경기 며칠 뒤, 인천의 한 팬에게 무고사의 이적에 대해 물었다. 뜻밖에도 슬픔보다 긍정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당연히 서운은 하지만 원망하지 않아요. 감사와 응원을 더 보내주지 못한게 오히려 미안할 정도입니다. 왜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돌아올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인천은, 우리는 틀림없이 무고사를 반겨줄 겁니다."

무고사가 인천에서 어떤 사랑을 받았는지 알기 쉬운 답변이다. 국가대표 경기에서도 인천 응원가를 듣고 웃으며 다가왔던 선수, 인천 팬들로 하여금 생소한 몬테네그로의 빨간 국기를 흔들게 했던 공격수, 파검(파랑검정)의 피니셔(Finisher) 무고사는 그 자체로 인천의 낭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