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팽팽했던 120분간의 혈투가 찰나의 변수에 기울어졌다.
18일 오후 5시 일본 우라와 코마바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2022 AFC 챔피언스리그(ACL)’ 16강전에서는 K리그 팀들 간의 맞대결이 펼쳐졌다. 대구 FC와 전북 현대가 맞붙은 경기에서 전북은 연장후반 추가시간에 터진 김진규의 결승골로 대구를 2:1로 꺾고 8강에 진출했다.
대구는 조별리그 F조에서 우라와를 승자승 우세로 제치면서 조 1위로 예선을 통과했었다. 그러나 16강을 이끌었던 가마 감독이 리그에서의 성적 부진으로 최근 사임하면서 수장 공백 상태로 본선을 치러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예선에서 6골을 기록한 제카와 3골을 기록했던 이근호에 더해 예선을 뛰지 못했던 에이스 세징야의 합류가 대구의 8강을 견인할 수 있는 요소가 될지 주목됐다.
전북은 조별예선 H조에서 3승 3무를 기록하며 요코하마에 이은 조 2위로 본선에 합류했었다. 표면적으로 무패를 기록했지만, 6경기 7득점의 무딘 득점력을 보여주면서 본선 진출팀들 중에서 가장 저조한 공격력을 보였다. 일류첸코의 이적과 쿠니모토의 방출, 홍정호의 부상 등 포지션별 이슈로 선수층이 얇아진 부분도 변수였다. 양 팀은 올 시즌 K리그에서의 두 번의 맞대결에서 승부를 가리지 못했고, 최근 팀 컨디션이 좋지 못한 공통된 문제를 안고 있었다.
대구는 김진혁 대신 선발출전한 조진우가 홍정운, 정태욱과 함께 쓰리백을 채웠다. 좌우 측면은 리그에서 선발출전기회를 많이 얻지 못했던 케이타와 장성원이, 중앙 미드필더는 베테랑 이용래와 신예 황재원이 나섰다. 최전방은 부상에서 복귀한 세징야가 전북과의 2차례 맞대결에서 모두 골을 기록했던 고재현, ACL 조별예선에서 펄펄 날아다녔던 제카와 호흡을 맞췄다.
전북은 ACL 조별예선 4경기를 2실점으로 막아냈던 이범수 골키퍼가 골문을 지켰다. 포백은 김진수-윤영선-박진섭-김문환의 베스트 멤버를 내세웠고, 3선은 맹성웅과 류재문을 배치해 공수에서의 유기적인 움직임의 임무를 부여했다. 백승호를 전진 배치해 김보경, 한교원과 함께 보다 공격적인 역할을 주문했고, 최전방 송민규는 올 시즌 두 번째로 제로톱 미션을 받았다.
전반 대구는 제카를 제외한 전원이 수비에 집중하면서 상대 패스 실수를 통한 역습을 노렸다. 전반 21분 제카가 하프라인에서 인터셉트 후 드리블로 골문까지 밀고 들어가면서 전북을 위협했다. 골키퍼와 1:1 기회가 만들어졌지만, 윤영선이 슬라이딩 태클로 제카의 마무리 슈팅을 저지하면서 득점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전북은 점유율을 바탕으로 중앙에서부터 공격기회를 만들어갔지만, 전반 43분 백승호의 프리킥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득점기회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양 팀의 전반은 긴장만 유지한 채 0:0으로 끝났다.
전북 공격수들의 재능은 후반이 시작하자마자 발휘됐다. 오른쪽 측면에서 한교원이 개인기로 케이타를 따돌리고 크로스를 올렸고, 송민규가 오른발 다이렉트 발리 슈팅으로 오승훈 골키퍼 다리 사이를 뚫어내면서 선제골을 터트렸다. 송민규의 올 시즌 ACL 1호골로 전북은 1:0으로 앞서나갔고, 송민규는 리그 경기 포함 3경기 연속 득점을 기록하며 절정의 폼을 과시했다. 실점한 대구는 케이타를 홍철로 교체하면서 실점의 원인이 되었던 측면에서의 수비를 강화했다.
대구의 만회골이 터졌다. 실점 후 10분을 넘기지 않았고, 주인공은 제카였다. 후반 10분 황재원의 로빙패스를 제카를 막고 있던 윤영선이 뒤로 빠뜨렸고, 제카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오른발 슈팅으로 마무리하면서 대구의 동점골을 만들어냈다. 제카의 이번 ACL 7호골이었고, 스코어 1:1이 되면서 경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양 팀의 지난한 ACL 16강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동점 후 다시 촘촘한 수비로 방어태새를 갖춘 대구는 후반 21분 김진혁과 페냐를 투입하면서 추가 득점을 위한 빌드업을 시작했다. 전북도 바로우를 교체인 시키면서 측면에서의 파괴력을 강화했다. 대구는 후반 28분 페냐가 올려준 크로스를 김진혁이 니어 포스트에서 헤더로 잘라먹으면서 득점을 노렸다. 그러나 정확도가 떨어진 헤더는 골문을 벗어났고, 교체카드들의 공격 시도로 만족해야했다. 후반 35분 대구는 이근호를 4번째 교체카드로 꺼내들었다. 전북도 2번째 교체카드로 이승기를 사용했다. 전북의 측면에서부터의 공격을 높이로 막아내던 대구는 후반 40분 역습상황에서 다시 한 번 기회를 잡았다. 페냐가 오른쪽 측면에서 왼발로 크로스를 올려줬고, 이근호가 정확한 위치선정에 이은 다이빙 헤더를 시도했다. 그러나 회심의 헤더가 골문을 살짝 벗어나면서 경기를 끝낼 수 있었던 결정적인 장면이 그렇게 지워졌다.
후반에 1골씩을 주고 받으며 승부를 가리지 못한 양 팀은 연장전에 돌입했다. 대구는 김우석을 마지막 교체카드로 사용했고, 전북은 구스타보와 문선민을 투입하면서 막힌 공격에 혈을 뚫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연장전반 대구는 조진우, 김진혁을 활용한 높이로 득점기회를 만들어 갔고, 전북은 이승기와 김진수가 정교한 중거리 슈팅으로 골대를 맞추면서 대구 선수들을 긴장시켰다. 대구도 질세라 페냐가 날카로운 중거리 슈팅으로 응수했다.
득점 없이 연장전반을 마친 양 팀은 연장후반에 들어갔다. 연장후반은 대구의 선방이 돋보였다. 오승훈이 바로우와 구스타보의 결정적인 슈팅을 슈퍼세이브 해내면서 양 팀 벤치가 슬슬 승부차기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 사이 전북은 마지막 교체카드로 김진규를 사용했고, 그 카드는 이 경기의 히든카드가 됐다. 연장후반 추가시간 바로우의 크로스에 이은 문선민의 헤더가 대구 문전에 떨어졌다. 대구가 공을 클리어하는 순간 동료선수를 맞고 공이 흘렀고, 세컨드 볼을 김진규가 놓치지 않고 골문에 차 넣었으면서 극적인 역전골을 터뜨렸다. 김진규의 골로 2:1로 리드를 잡은 전북은 남은 추가시간을 실점 없이 막아내면서 120분간의 치열한 사투를 마무리 지었다. 단 10분을 뛰고 결승골을 만들어 낸 김진규는 ACL 데뷔골을 팀의 8강행을 결정짓는 골로 기록하면서 이날을 특별한 하루로 기억하게 됐다.
대구를 제압하고 8강행을 확정 지은 전북은 트레블을 향한 희망을 이어갔다. 19일 동아시아 8강행 팀들이 확정되면 추첨을 통해 상대가 결정된다. 8강은 22일 치러지고, 승리 시 준결승은 25일 치른다. 차주에 전북의 트레블 향방이 결정되는 셈이다. 2년 연속 8강 문턱에서 좌절한 대구는 K리그에서의 성적 부진으로 인해 내년 ACL 출전이 불투명해졌다. 마지막 남은 희망은 4강까지 진출한 FA컵이다. 미래는 예측할 수 없는 바 경우에 따라서는 결승에서 다시 한 번 전북과 리턴매치가 펼쳐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