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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시민구단 미래에 잿빛물 들이는 인사권자의 ‘덧칠’

김호곤 이어 이영표도 ‘재계약 불가’…팬들 목소리 안 들리나
정치논리에 상처입는 축구계…나쁜 선례와 과감히 작별해야

지난해 12월 12일 펼쳐진 '하나원큐 K리그 2021' 강등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결승골을 넣은 강원 황문기(우)에게 축하를 건네고 있는 강원 FC 이영표 대표이사(좌) ©연합뉴스 

 

정치는 선택이라는 말이 있다. 명분과 실리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둘 다 얻으면 최상이지만 쉽지 않다. 안타깝게도 정치권은 종종 둘 모두를 놓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곤 한다. 명분도 실리도 없는 설익은 인사로 잘 굴러가는 시민구단들의 바퀴에 굳이 펑크를 내기 직전인 강원도와 수원시의 경우다. 

 

강원 FC와 수원 FC는 시민구단이다. 도지사와 시장이 구단주다. 선거에서 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운영의 지속성이 조금이라도 흔들릴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그 진폭을 최소화 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존경할만한 구단주라 하겠다. 그러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인력 존중이다. 정치인들에게 정치라는 영역이 있듯이, 축구인들에게도 축구라는 전문 영역이 있다. 한 우물을 파온 전문성에 대한 신뢰와 축구인들 간의 네트워크, 팬들과의 소통 등 모든 것들을 망라한다.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구단주라는 지위에 오르면서 축구단의 인사권한을 부여받았지만, 그것을 신중히 사용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최근 강원 FC의 축구 발전에 비전을 가지고 있던 이영표 대표이사의 재계약이 불발돼며 거대한 진동이 감지됐다. 약팀이던 수원 FC가 1부에 안정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뒷받침한 김호곤 단장도 그 이전에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다. 석연치 않은 이유와 과정들은 리그 팬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우선 명분이 없다. 강원 FC는 2021년 이영표 대표이사가 팀을 맡은 이후 성적과 실리, 평판에서 모두 성과를 거두고 있는 중이다. 2021시즌 임기 첫해에 강등 위기를 맞았지만, 최용수 감독을 영입하면서 팀을 추스렸고, 극적으로 1부에 잔류시켰다. 실제 최용수 감독은 강원 합류에 대해 이영표 감독에 대한 신뢰가 큰 부분을 차지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2022시즌에는 팀을 6위로 끌어올리면서 2019년 이후 3년만에 파이널 A행으로 이끌었다. 성적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실적도 좋았다. 이미 언론에서 알려진대로 스폰서 유치와 굿즈 매출, 관중수에서 확연한 성장세를 이뤄냈다. 개인적으로도 사회적 기업 ‘삭스업’ 운영과 축구 관련 방송 출연을 통해 축구발전에 진심인 행보를 보여왔다. 팬들과의 소통을 통한 평판도 좋았다. 강원의 한 팬은 기자에게 이 대표이사와 관련, "저녁 경기가 종료된 늦은 시간에 팬들이 문제제기를 한 적이 있다. 직접 대표이사실로 데리고 가시더니 대화를 통해 해결하셨다"라면서 "‘팬들과의 유대감을 중요시하는 분이시구나’ 라고 느꼈다"라고 전한 바 있다. 비즈니스적인 선순환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재계약이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명분을 잃었다.

 

다음으론 팬들에 대한 존중이다. 인사 과정에서 팬들을 전혀 납득시키지 못했다. 강원도는 재계약을 거절하면서 팬들에게 명확한 사유를 밝히지 않았다. 수원시의 경우에는 해명은커녕 수원 FC의 서포터즈인 ‘리얼크루’의 재계약 촉구 움직임을 김호곤 감독의 배후 조종 의혹으로 대응하면서 모욕감마저 심어줬다. 수원 FC 서포터즈 리얼크루는 지난 10월 28일 “수원시와 시의회는 서포터즈를 ‘어용 단체’로 이유 없이 규정하였다. 이로 인해 리얼크루는 물론, 순수한 마음으로 팀을 응원하는 K리그 서포터즈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심각한 우를 범하였다”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내고 발언자와 수원시의 공식 사과를 촉구했다. 강원 서포터즈 나르샤도 "‘서포터즈 입장에서 정말 가장 화나는 발언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된다. 망언에 가까운 실언이다. 이 자리를 빌어 수원시가 수원FC 서포터즈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하기 바란다"라고 불쾌감을 표했다. 두 지자체는 10년 이상 순수한 마음으로 묵묵히 강원 FC와 수원 FC의 응원석을 지킨 서포터즈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척을 지는 우를 범하고 있다. 결국은 그들이 있어야 구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은 것처럼 말이다. 유권자를 잊은 정치인은 낙선한다.

 

또한 애초에 원론적으로 스포츠가 정치에 휘말리는 모양새는 바람직하지 않다. 스포츠는 정정당당한 경쟁을 통해 승패를 가르는 정직한 분야다. 축구계에서 승부조작이나 매수가 환영받지 못하는 수준을 넘어서 관련자들의 영구 제명까지 가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대부분의 팬들은 부정적인 방법으로 승패에 개입한 팀을 평생의 라이벌 팀보다 더 싫어한다. 또한 그 과정에서의 공정함이란 가치에 동의하기에 승패와 관계없이 결과에 순순히 승복한다.(물론, 아쉬움에 시간이 길어지기도 한다)

 

결국, 스포츠의 본질이자 중요한 것은 과정에서부터 결과까지의 최선과 투명성이다. 구단을 책임졌던 축구인 대표이사와 단장은 과정과 결과에서 최선을 다했다. 축구의 룰에 충실했던 셈이다. 정치인 구단주들은 여기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시민, 도민구단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더해 좋은 성적까지 거뒀다면, 그 공로는 구단 대표이사(혹은 단장) 이하 감독, 코치진, 프런트, 선수들, 그리고 팬들과 도민(시민)들에게 돌아가야 마땅하다.  축구는 정치라는 분야의 정직한 답을 기다리고 있다. 국민들의 수준이 높아지고, 실시간 소통이 가능한 이 시대에는 정치가 스포츠를 흡수할 수 없다.

 

안 좋은 선례로 남을 가능성도 생각해야 한다. 다음 대표이사와 단장에 누가 오더라도 작금의 우당탕탕 상황으로 인해 곱지 않은 시선과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공모를 통한 ‘눈가리고 아웅’도 그 여파를 피해 갈 수 없다. 그로 인해 구단 운영과 감독, 선수, 팀 성적이 영향을 받는다면 지자체와 구단, 선수, 팬들 모두 손실이 막심해진다.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감당할 만큼 '정치적 임명'이 중요한 지 고민해봐야 한다.

 

조금 수학적으로 풀자면, 그 책임의 비용과 의견수렴이라는 명분을 통해 재계약 불가 의사를 철회하는 비용을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더 크게 보면 시민구단의 대표이사와 단장이라는 직책에 대한 안 좋은 선례를 만들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구단의 대표이사/단장이 실력이 아닌 ‘논공행상’의 자리로 변질된다면 뛰어난 행정가들이 과연 한국축구와 K리그 발전을 위해 소명 의식을 가지고 뛰어들 의욕이 생길까하는 질문이다. 당장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했던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 박지성도 축구행정가 과정을 밟고 있다. 구단주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의 선전을 응원하는 한 사람의 국민이라면 좋지 않은 선례와의 과감한 작별을 선택하는 용기를 내야 한다.

 

"‘99도까지 온도를 열심히 올려놓아도 마지막 1도를 넘기지 못하면 물은 영원히 끓지 못한다. 물을 끓이는 것은 마지막 1도다. 이 순간을 넘어야 그 다음 문이 열린다. 그래야 내가 원하는 세상으로 갈 수 있다.“ 전 피겨 스케이팅 선수 김연아의 말이다. 한국 프로축구는 여전히 발전할 여지가 많은 리그다. 시민 구단의 1도를 높이는데 지자체가 부디 장애물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